영혼 가출 판다곰(라떼 문화재단)

<aside> 🐼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찰나의 순간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우연히 본 무용단 공연에 매료된 테헤란로의 직장인은 어느새 15년 차 공연 기획자가 되었다.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황홀함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획자의 첫 발걸음과 단련된 열정을 마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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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영혼 가출 판다곰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연기획자 ‘영혼 가출 판다곰’입니다. 문화나 예술과는 전혀 관련 없는 행정학을 전공해 이쪽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꿔본 적 없었어요. 공공기관은 순환보직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공연기획, 공연장 대관, 티켓 매니징, 홍보·마케팅, 예술교육, 예술단체 운영 등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업무들을 모두 거쳐 왔네요. 어떤 일을 하던 “사람과 공간의 예술적 취향을 만들어가고 공유하자”라는 저만의 슬로건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Q. 행정학을 전공하셨다고 해서 놀랐어요! 당연히 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을 전공하셨으리라 생각했거든요. (웃음) 영혼 가출 판다곰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공연기획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계속 이 일을 해오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대학 졸업 후, 테헤란로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요. (웃음) 그러던 어느 날, LG아트센터에서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의 ‘데카당스(DecaDanse)’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 공연을 보는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환희와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정말이지 처음 접해보는 황홀한 감정이었어요! 그리곤 결국 사표를 내고 대학원에 가서 무용 이론을 공부했답니다.

그 후 민간 공연기획사에서 5년,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네요. 계속 이 일을 해오고 있는 이유는 글쎄요. 아시다시피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은 아니거든요. (웃음) 대학 친구들만 봐도 정부 부처, 은행, 신문사 등에 자리 잡았고, 사회적인 평가나 보수 수준 등 여러 면에서도 굉장히 비교되고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뭔가 특별한, 뭔가 더 의미가 있다’라는 프레임을 혼자 덧씌웠어요. 겉으로는 보잘것없더라도 추구하는 가치만큼은 하이 퀄리티(High quality)라는 ‘오만과 편견’ 속에서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웃음)

Q.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특별한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며 일을 하고 계신 거 같아요. 그간 공연 기획자로 일하시면서 민간 기획사와 여러 공공기관을 거쳐 오셨는데요. 영혼 가출 판다곰님이 생각하시는 두 기관의 특징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민간 기획사는 ‘기획’의 비중이 높아요. 반면에 공공 기관은 ‘기획’은 물론이고, ‘행정’ 또한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민간은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큼 창의적이고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도 하고요. 민간에서 일할 때는 근사한 결과물이 나오면 그 뿌듯함 하나로 모든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에 비해 공공 기관은 확실한 명분과 절차가 매우 중요해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보다 명확해야 하고, 투명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며, 크나큰 책임감이 뒤따르죠. 민간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꺅! 해냈어!”라는 기분이 들었다면, 공공에서는 “휴~! 무사히 잘 끝났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웃음)

Q. 확실히 공공기관은 명분과 절차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공공 기관의 공연장에서는 1년의 공연을 기획할 때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과정이 궁금합니다.

연간 공연 계획을 수립할 때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기 때문이죠. 공공성, 예술성, 대중성의 균형 있는 안배와 지역 특성 반영, 공연계 트렌드 분석은 일상적인 핵심 과제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시즌별 대표작을 우선 라인업하고, 그 곁으로 갖가지 테마와 의미를 지닌 프로그램들을 덧붙여 나가고 있어요. 저 같은 공공기관 종사자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감정과 감각을 지닌 작품을 잘 선별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안에 기획자의 색깔을 충분히 녹여내야겠지요. 관람 포인트를 감동에 둘 것인지, 재미에 둘 것인지 아니면 대중적 인기에 둘 것인지, 시선을 사로잡는 무대 연출에 둘 것인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 많아요.

Q. 연간 라인업을 기획하실 때 정말 많은 요소를 고려하시는군요. 확실히 공공기관의 공연은 상업적이거나 실험적인 성격과는 전혀 다른 방향 같아요. 다수의 사람이 공연을 관람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영혼 가출 판다곰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공연기획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에 앞서 ‘왜 해야 할까?’를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시작점에서부터 기획 의도가 명쾌하게 제시된다면, 그 후 다음 단계들은 삐걱거림 없이 잘 운영되거든요. 그만큼 마음과 품을 많이 들인 공연은 관객들도 어떻게든 알아보시고 많이 관람하시는 것 같아요. 작품 자체를 통해서든 홍보물을 통해서든 어딘가에서 그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웃음)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의 예술가와 무대 앞의 관객들, 무대 뒤의 기획자와 스텝들이 공통적인 반응과 감정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넘치는 감정들로 인하여 공연장 안의 온도가 유난히 따뜻하게 스며들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아, 이번 공연 참 좋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Q. 내가 진행했던 공연이 좋았다고 느끼는 것만큼 일할 때 더 큰 보상은 없는 거 같습니다. 진행하셨던 공연 중에 혹시 가장 규모가 컸거나 기억 남는 공연, 혹은 가장 규모가 작았던 공연 등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